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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20대는 동네북이다. 등록금·취업 문제에 시달리며 ‘88만원으로 빚내는’ 20대는 6월2일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또다시 기성세대의 우려와 질타를 듣고 있다. 정치에 무관심한 20대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근거가 있다. 2008년 총선 당시 20대는 28.1%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정작 아무도 묻지 않는다. 왜 투표하지 않았느냐고 말이다. 그래서 20대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시사IN>은 한국청년연합(KYC·20~30대가 주축인 청년시민 사회단체로 20대 국회의원 만들기, 대선 후보 공개채용 프로젝트, 투표시간 연장 캠페인 등을 진행했다)이 지난 1월부터 20대 대학생 25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FGI(Focus Group Interview·표적 집단 면접)를 분석했다. FGI는 6~12명이 한자리에 모여 한 주제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말하는 면접 방식이다. 대학생뿐 아니라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한 사람, 실업자, 대학원생, 직장인 등 다양한 20대의 속내도 함께 들여다봤다.

20대의 ‘No Vote’ 사연은 다양했다. 그들은 “선거 당일 바빴고, 선거가 하는지도 모르게 지나갔으며, 귀찮다”라고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전선에 뛰어든 직장인 8년차 김현민씨(28)는 “투표 당일 쉬지 않는 경우도 많다. 여느 때와 비슷하게 출근해 잠시 시간을 내서 투표하러 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선희씨(25·대학원생)는 “신고된 주소지와 살고 있는 곳이 달라 부재자 투표를 해야 하는데, 신경을 안 쓰면 신고기간이 언제인지도 모르고 지나간다. 부재자 투표 시간도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로 짧다. 여러 가지로 투표장까지 가는 문턱이 높다”라고 말했다. 이번 선거에 민주노동당 서울시의원 비례대표 2번으로 출마한 추성호씨(28·대학생)는 부재자 투표소 설치 기준이 엄격한 점도 20대 투표율이 낮은 이유 중 하나로 꼽았다. 추씨는 “대학생 유권자 중에는 부재자 투표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는 선관위가 투표소 설치 기준을 2000명으로 두는데, 기준을 500명으로 내려 더 많은 투표소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은정인씨(24·대학생)는 “학교 가는 길이나 친구 만나러 가는 길에 전자투표장이 설치되어 있다면, 투표율이 올라갈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왜 투표해?”라고 묻는 20대
정치에 대한 기대가 없다는 말도 나왔다. 최슬기씨(27·직장인)는 20대의 저조한 투표율에 대해 “정치에 대한 희망이 있어야 투표장으로 발걸음한다. 내 한 표로 정치가 바뀌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 뻔히 보인다면 투표장에 갈 이유가 없다. 30대 이상은 투표를 통해 세상을 바꿔본 경험이 있지만, 2002년에 고3이었던 나를 비롯한 친구들에게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라고 말했다. ‘그들만의 리그’ 같아 보이는 정치에 대한 냉소가 무관심으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김국현 ‘2030 정치주권네트워크’ 사무국장(29)은 이 같은 현상을 정치 교육의 부재가 낳은 폐해라고 해석한다. 김씨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대학을 다닌 선배들은 운동권이든 아니든 간에 학내에서 자연스럽게 정치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오늘날 대학의 커뮤니티는 붕괴되었다. 요즘 20대는 선거가 자신의 삶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배운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박세훈씨(29·대학원생)도 “정치가 삶에 와 닿지 않는 20대의 현실 속에서는, 선거 당일 투표장에 가는 것보다는 토익학원을 가는 게 훨씬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이제 20대에게 투표하지 않는다고 뭐라고만 할 게 아니라 ‘왜 투표해야 하는지’ 설득하는 게 더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20대 관련 활동가들은 정책을 강조한다. 삶과 정치를 잇는 고리에 정책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의무니까) 투표해”라고 하기보다는 “네가 처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정책에 투표‘권’을 행사해라”로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융선 KYC 간사(34)도 20대를 위한 정책 만들기를 강조한다. 최 간사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각 후보자가 20대의 주요 관심사인 취업·연애 문제 등에 관한 정책을 내놓으면 20대도 투표한다”라고 말했다. 김신애씨(25·대학원생)는 “사실 투표율이 저조한 게 꼭 20대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요즘 세태를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기존 담론은 20대를 꾸짖는 소리가 강하다보니 반발심이 든다. 그런 방식이 아니라 ‘이러이러한 정책으로 네 삶을 바꿔볼 테니 투표해볼래’라고 권유하는 방식이라면 더 공감이 갈 것 같다”라고 말했다. 탁경태씨(28·취업준비생)도 “혼자 사는 사람을 위한 최저 용량의 쓰레기 봉투를 만들어주는 식의 사소한 정책이지만 내게 꼭 필요한 정책을 내는 사람이라면 표를 주고 싶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정책에 대한 목소리는 선거가 다가옴에 따라 점차 활기를 띠고 있다. 지난 4월25일 ‘2010 청년유권자행동’과 ‘대학생유권자연대 2U’는 서울 숙명여대에서 ‘2010 지방선거 청년·대학생 정책 10대 요구안’을 발표했다. ‘20’s party’도 5월3일 서울 대학로에서 ‘20대 정책 choice’ 행사를 열었다. 지방선거를 기회로 삼아 20대가 바라는 정책을 20대가 요구하겠다는 태세다. 이들은 등록금 인하, 주거권 문제 해결, 청년 고용 안정 등 20대의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선거와 관련된 20대의 움직임도 조금씩 일고 있다(32~33쪽 딸린 기사 참조).
20대 요구안의 가장 앞 자리를 차지하는 정책은 그들의 ‘비루한’ 현실과 맞닿아 있다. 대학생인 유권자는 등록금 문제 해결을 우선순위로 꼽았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 4월30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평균 등록금이 가장 비싼 연세대의 경우 연간 등록금이 907만4000원에 이른다. 등록금 1000만원 시대를 사는 최진경씨(22·대학생)는 “등록금은 장학금으로 충당했지만 아르바이트를 해야 생활이 가능했다. 아이스크림 가게 종업원, 과외 교사, 학원 강사 등을 하며 학점 관리까지 하다보니 동아리 활동같이 돈이 되지 않는 일에 시간을 쓰는 게 심리적으로 부담이 되었다”라며 팍팍한 현실을 토로했다. 비싼 등록금에 부담을 느끼는 대학생은 하나같이 “등록금 인하가 핵심”이라고 입을 모았다. 남윤철씨(26·대학생)는 “이명박 정부가 취업후등록금상환제(ICL)를 실시하지만 금리가 싸지도 않고 졸업 후에도 계속 부담이 되는 빚이라 이용하고 싶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이 공약했던 반값 등록금 정책을 실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등록금 인하 외에도 등록금상한제 시행, ICL 자격요건 삭제, 대출금리 복리에서 단리로 전환 등과 같은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취업과 관련된 요구사항은 다양하게 나왔다. 대학교 4학년이 되어 취업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김희정씨(24·대학생)는 청년 일자리의 질을 담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경기 불황을 핑계로 기업체에서는 비정규직과 인턴 채용만 늘리는데, 한번 비정규직은 영원한 비정규직 아닌가. 불안한 고용 현실에 저당잡힌 청춘들을 위해서라도 비정규직 축소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이력서 차별 금지를 법적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류승원씨(30·대학원생)는 “이력서를 쓸 때, 가족관계는 물론이고 아버지 직업, 전세 사는지 월세 사는지도 물어본다. 입력하지 않으면 (입사 지원서가)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않으니 지원 자체가 불가능하다. 30대 기업 대개가 그러하다”라고 꼬집었다. 사진과 신체조건, 출신학교 따위 항목이 없는 노동부 표준이력서를 권고 수준이 아닌 강제 사항으로 바꿔야 한다는 말이다. 그 밖에 청년고용센터 건립, 백수 탈출 지원금 지급 등과 같은 아이디어도 있었다.
주거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고향을 떠나 ‘유학’ 생활을 하는 청년들에게 스스로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주거 공간을 보장해달라는 요구다. 소형 임대주택은 줄고 전월세가 가파르게 오르는 현실에서 갈 곳 없는 20대들은 주거 문제에 허덕인다. 대구에서 생활하다 대학 간 교류 프로그램으로 1월부터 서울에서 살기 시작했다는 신선화씨(24·대학생)는 주거 문제의 심각성을 온몸으로 느꼈다. 신씨는 “현재 월세 38만원인 5평짜리 옥탑방에 산다. 그나마 싸게 구한 집이다. 이 가격이면 대구에서는 10평이 넘는 좋은 집에서 살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오는 이야기는 ‘반값 기숙사’다. 최융선 KYC 간사는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있는 가든파이브 하나 지을 돈이면 월 14만원을 내는 남도학숙(광주시와 전남도가 서울 유학생을 위해 공동 설립한 기숙시설) 46개를 만들 수 있다. 정책을 요구하면 지자체는 예산 핑계부터 대는데, 20대의 방살이 문제 해결은 예산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다”라고 말했다.
군인 복지에 관한 목소리도 나온다. 많은 남성이 20대 전반기를 보내는 군대 생활은 정책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지적이다. 투표율이 높은 군인을 위한 정책이 있다면 많은 20대의 표심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심미정씨(23·대학생)는 사병을 위한 복지카드를 제안한다. 공무원 복지카드처럼 군인들이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마일리지 카드와 같은 개념이다. 심씨는 “20대 초반에 군대 간 남자친구를 둔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수신자부담 전화가 부담스럽다는 말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지질하다’ ‘사소한 문제다’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당사자에게는 중요한 이야기다. ‘군대 가서 바보된다’ ‘군대 가면 헤어진다’와 같이 군인의 삶과 연관된 문제를 해결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각 당의 20대 정책, 차별성 없어”
이와 같은 20대의 정책안이 지방선거에서 당장 의제가 될 수 있겠느냐는 지적도 있다. 한빛씨(23·대학생)는 “좋은 정책들이지만, 지방선거 의제로 삼기에는 부적절한 것도 있다. 주거권 문제야 지방정부와 연계해서 논의해볼 수 있는 사항이지만, 등록금이나 취업 문제를 지방 정부가 해결할 수 있나”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김성환씨(27·대학생)의 생각은 다르다. 김씨는 “당장 지방선거에서 이 모든 정책 제안사항이 실현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번 기회를 통해 20대의 현실을 드러내고, 20대가 정말 바라는 게 무엇인지를 공론화한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박수관씨(24·대학생)도 “이제까지 정치인이 내건 공약 중에 20대에게 필요한 정책은 별로 없었다. 등록금 문제 해결, 비정규직 축소 등과 같이 20대의 현실이 나아질 가능성이 보인다면 20대의 정치적 관심도 높아질 거라고 본다. ‘뭔가 된다’라는 희망의 단초를 이번 지방선거에서부터 열어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20대의 요구가 활발해지면서 각 정당에서도 20대를 위한 정책을 내놓고는 있다. 하지만 스스로도 부족하다는 반응이다. 한나라당 청년국의 한 관계자는 “트위터 기자단, 20대 유권자와 당 고위직과의 타운홀 미팅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솔직히 이번 선거에서 딱히 20대에만 포커스를 맞춘 정책은 없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정책국의 한 관계자는 “20대를 위한 공약은 따로 없지만, 사회공공서비스 일자리 확충 등과 같은 10개 정도의 청년용 공약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나마 진보 정당의 행보가 눈에 띄는 정도다. 민주노동당은 ‘20대를 위한 임대주택 공급 지원 확대’, 진보신당은 ‘과다 스펙 해소’를 위한 정책을 내놨다. 박희진 ‘한국청년연대’ 공동대표는 “각 당이 요식행위같이 20대 정책을 내놓다보니 별 차별성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직접 내는 정책안을 적극적으로 살펴주길 바란다”라고 비판했다.
20대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과연 선거 파업을 끝내고 동네북 처지를 벗어날 수 있을까. “투표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라는 그들을 투표장까지 끌어낼 매력적인 정책이 핵심이다. 이제 정치권이 20대 표심을 자극하는 정책을 들고 나설 차례다.
-시사in 139호 (201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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